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전구에 빛을 켜주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CULTURE/BOOK

by 엠큐데이 2026. 3. 10. 12:26

본문

반응형

▲MQDAY INSTAGRAM


 

가장 못생긴 여자에게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위로

 

외모 지상주의가 하나의 종교가 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보이는 것너머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2009년 출간된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이 직설적이고도 불편한 질문에 가장 아름답고 슬픈 방식으로 답한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로 실사화되며 다시금 베스트셀러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는 이 소설은, 단순히 로맨스를 넘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상처받은 영혼들의 연대를 그린 명작이다.

 

소설은 1980년대 후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1인칭 주인공인 는 아주 잘생긴 청년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남 배우로 성공한 뒤, 조강지처이자 외모가 볼품없던 의 어머니를 버리고 젊고 예쁜 여자와 재혼한다. 이 비극적인 가정사 때문에 는 예쁜 여자와 잘생긴 외모라는 가치 자체를 혐오하며, 세상에 무심한 태도로 살아간다.

 

스무 살 무렵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는 백화점 식당에서 일하는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이다. 어릴 적부터 외모 때문에 수많은 놀림과 멸시를 당하며 자라 자존감이 바닥인 그녀에게, 눈부시게 잘생긴 가 다가간다.

 

그녀는 처음엔 그의 호의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밀어내려 하지만, 상처받은 두 영혼은 서로를 알아보며, 조심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들 곁에는 백화점 아르바이트 동기이자 훗날 소설가가 되는 괴짜 친구 요한이 함께하며 우정과 청춘을 쌓아간다.

 

소설의 중반부,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자격지심과 에 대한 미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녀가 떠나며 남긴 30페이지 분량의 긴 편지는 이 소설의 압권이자 독자들의 가슴을 가장 세게 때리는 명장면이다.

 

여섯 살 또래 친구들에게 외모로 놀림받으며 처음 겪은 격리의 감정, 화장을 하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일까 봐 평생 자신을 꾸미지 못했던 삶, 사랑받는 것을 포기했기에 사랑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내면의 고통이 눈물겹게 묘사된다. 많은 독자들이 작가가 직접 못생긴 여자로 살아본 것이 아닐까느낄 만큼, 이 편지가 뿜어내는 섬세하고 세밀한 심리묘사는 경이롭다.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유명한 피아노곡 제목에서 따왔다.

 

작가 박민규는 진짜 왕녀 마르게리타 테레사가 아닌, 외모 지상주의라는 잔인한 사회 속에서 들러리 취급받으며 내면이 죽어버린무수한 못난이들을 위한 진혼곡을 연주하듯 이 글을 바쳤다.

 

작품 속에서 외모의 상처를 치유하는 핵심은 바로 전구와 빛이다.

 

“빛이 들어오면 유리의 윤곽이나 모양은 모두 사라지고 빛만이 보여. 결국 어떤 못난 전구도 빛이 들어온다면 어느 불 꺼진 전구보다 아름다워져.”

 

사람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외양의 껍데기가 아니라, 누군가 그를 사랑해 주는 내면의 불빛이라는 사실을 뭉클하게 전한다.

 

소설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 결말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크다. 영화에서는 비극적인 교통사고와 인물들의 상실감이 꽤 직접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원작 소설의 결말은 다르다. 첫눈 오는 밤 고백을 하러 가던 는 끔찍한 버스 사고로 의식을 잃고 무려 13년이 지나서야 정상적인 몸을 회복한다. 중년이 된 는 십수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녀를 찾아 독일로 떠나고, 마침내 두 사람이 재회하여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감동적인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박민규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키치한 유머는 걷어내고, 그 자리에 깊은 서정과 쓸쓸한 위로를 채워 넣은 소설이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잘생긴 남자의 판타지가 아니다. 껍데기만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쇼윈도 속에서, 어떻게든 상처받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외모, 학벌, 재력 등 보이지 않는 스펙으로 서로를 쉼 없이 줄 세우는 이 시대에, 타인의 진정한 내면()을 사랑할 수 있는지 묻는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울림을 준다.


 

-저자 소개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박민규만큼 등장과 동시에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키며 자신만의 확고한 장르를 구축한 작가는 드물다. 독특한 선글라스와 묶은 머리, B급 서브컬처와 무거운 사회 비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문체. 그는 2000년대 한국 문단에 나타난 가장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돌연변이였다.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난 박민규 작가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엔 시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엔 해운회사 영업사원과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을 했다. 그러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박민규 작가의 데뷔는 그야말로 화려했다. 2003, 미국의 패권주의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비판한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같은 해 프로야구 만년 꼴찌 팀을 소재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 8회 한겨레문학상까지 거머쥔다. 데뷔 첫해에 굵직한 문학상을 싹쓸이하며,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회가 규정한 성공의 궤도를 이탈한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밀려난 백수, 프로야구 만년 꼴찌 팀의 팬,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왕따, 그리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까지.

 

그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이 루저들을 단순히 불쌍하고 동정받아야 할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민규 작가는 져도 괜찮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훌륭하다는 따뜻한 위로를 던진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와 무한 경쟁 시스템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 속한 개인들에게는 특유의 유머와 키치한 상상력으로 단단한 방어막을 쳐준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가장 큰 특징은 ‘B급 서브컬처의 적극적 차용이다. 만화, 대중음악, 무협, 공상과학 같은 요소들을 순수 문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자유롭게 버무린다.

 

대표적인 단편집 카스테라에서는 냉장고 안에 소음과 공해와 미국, 심지어 코끼리까지 집어넣어 버리는 기상천외한 환상성을 보여준다. 문장 중간에 뜬금없이 단락을 나누거나 독특한 기호를 사용하는 파격적인 편집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평론가들은 그를 한국 문학의 엄숙주의를 깨부순 작가로 평가한다.

 

언제나 통통 튀는 상상력과 유쾌한 농담으로 세상을 꼬집던 박민규 작가는, 2009년 장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발표하며 또 한 번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이 소설은 박민규 작가 스스로 “80년대 빈티지 신파라고 불렀을 만큼, 이전의 키치한 유머를 걷어내고 인간 근원적인 상처와 사랑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정통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한다. 신혼 시절, 아내가 던진 제가 못생긴 여자라면 그래도 절 사랑해줄 건가요?”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외모 지상주의라는 폭력 앞에 피 흘리는 이들을 위한 뭉클한 진혼곡이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가벼운 농담꾼이 아니라, 깊은 서정을 다룰 줄 아는 거장임을 중명했다.

 

박민규 작가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이 도달한 가장 독창적인 영토이다.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상을 휩쓸며 평단과 대중의 압도적인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소외된 채 작은 방에 웅크려 있는 우리 모두의 어깨를 툭 치며, 특유의 농담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세상이 너희를 패배자라 부를지라도, 너희의 우주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는 여전히 상처 입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기발하고도 다정한 이야기를 짓는 한국 문학의 대체 불가능한 작가다.

반응형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정보

 

-장르 : 한국장편소설

-저자 : 박민규

-쪽수 : 448

-발행 : 2009년


글 _ 엠큐데이

편집 _ 한이룸

mqday@naver.com

ⓒ엠큐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