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간 청춘의 궤적을 쫓는 야간열차, 문지혁 장편소설 ‘나이트 트레인’
문지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나이트 트레인’은 어느 날 본가에서 배달된 낡은 택배 상자 하나로 시작된다.
그 상자 속에는 은색 소니 CDP, 빛바랜 다이어리, 그리고 버린 줄만 알았던 ‘녹슨 은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25년 전, 풋풋했던 첫사랑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와 함께 받았던 그 반지를 계기로, 소설은 독자들을 1999년 아득하고도 찬란했던 스무 살의 유럽 여행길로 초대한다.
대학생이던 1999년, 주인공 ‘나’는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O’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는다. ‘O’는 자신들이 함께 보았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인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산 은반지를 이별 선물로 건넨다.
실연의 고통에 빠진 ‘나’는 그 반지를 다시 빈의 대관람차에 버리기 위해, 21일간의 유럽 배낭여행 패키지에 오른다. 일종의 애도 의식이자, 반지를 버려야만 목적이 완성되는 이 슬픈 여행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청춘들이 동행한다. 하지만 여행은 늘 그렇듯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낯선 타국 땅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은 서서히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며 성장해 나간다.
-자전적 경험과 허구의 경계, 몰입감 넘치는 ‘오토픽션’
문지혁 작가의 특기이기도 한 ‘오토픽션(자전적 소설)’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1999년에 작가가 직접 떠났던 유럽 여행의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 읽다 보면 이것이 작가의 실제 일기장인지 허구의 소설인지 헷갈릴 만큼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소니 CDP, 야간열차, 필름 카메라 등 90년대 세기말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소품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세 겹의 시간이 교차하는 정교한 액자식 구성
소설 ‘나이트 트레인’은 아주 독특한 세 가지 시간의 층위를 가진다. 첫째는 2024년 현재, 소설가인 ‘나’가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시간. 둘째는 1999년, 21일간 유럽을 누비던 여행의 시간. 마지막 셋째는 1999년 여행 당시 주인공이 노트에 끄적이던 ‘소설 속의 소설’ 시간이다. 이 정교한 구성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나’를 다정하게 응시하는 현재의 성숙한 시선을 덤으로 얻게 된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모든 여행자(삶)를 위한 위로
주인공은 애초의 계획과 달리 빈이 아닌 니스 해변에 반지를 버리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반지는 25년 뒤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삶이란 영원히 반복되는 궤도 같으며, 완벽한 이별이나 완벽한 애도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그 묵직한 메시지가 현재의 삶을 벅차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소설 ‘나이트 트레인’은 첫사랑의 열병을 앓던 서투른 청춘에게 보내는 다정한 안부 인사와도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 야간열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풍경, 그리고 아프게 빛나던 스무 살의 감정들이 책장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목적성만을 안고 쳇바퀴 같은 일상을 다그치며 살아가는 분이라면, 오늘 밤 이 책을 펼치고 잃어버린 젊음의 낭만과 자유를 향해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어보길 바란다. 분명 잊고 있던 내 안의 무언가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기록하고 기억하는 소설가, 문지혁의 문화적 궤적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난 문지혁 작가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와 뉴욕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로 등단한 이후, 그는 줄곧 ‘나’라는 존재의 내면과 과거의 시간을 집요하면서도 다정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문지혁 작가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가 단지 소설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쓰기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는 ‘친절한 가이드’ 역할도 자처한다는 점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에세이를 통해 창작의 뒷면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행보는, 그의 소설이 가진 진정성을 뒷받침해 준다.
문지혁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오토픽션’이다. 자전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그의 스타일은 독자에게 작가의 실제 삶을 엿보는 듯한 내밀한 친밀감을 선사한다.
문지혁 문학이 건네는 매력
1. 나를 마주하는 ‘다정한 성찰’
문지혁의 소설은 화려한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 풍경에 집중한다. 과거의 실수나 아픈 기억을 억지로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며, “그때의 나도 나였어”라고 토닥여 주는 그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2. 세밀하게 복원된 ‘시대의 노스탤지어’
C-60 카세트테이프, 은색 CDP, 필름 카메라 등 그의 글에는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같은 소품들이 가득하다. 특정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짙은 향수를,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아련한 낭만을 선사하며 독자들을 순식간에 추억의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3. 삶을 긍정하는 ‘여행자의 태도’
그는 인생을 하나의 긴 여행으로 본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들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길을 잃어도 결국 어딘가에 닿는다”는 그의 낙관적인 세계관은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묵직한 위로가 된다.
문지혁은 렌즈를 통해 타인을 관찰하기보다, 거울을 통해 자기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꺼내 보여주는 작가다. 2025년 한무숙문학상을 받으며 그 문학적 성과를 다시 한번 인정받은 그는, 이제 한국 문학에서 ‘자기 서사’를 가장 아름답게 빚어내는 장인이 되었다.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은 옛 기억의 반지가 남아 있다면, 혹은 내가 걸어온 길이 정답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그의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문지혁 작가의 문장들은 당신이 지난 시간을 긍정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가장 다정한 야간열차가 되어줄 것이다.

소설 ‘나이트 트레인’ 정보
-장르 : 한국 장편소설
-저자 : 문지혁
-쪽수 : 212쪽
-발행 : 2026년 02월05일
글 _ 엠큐데이
편집 _ 한이룸
mq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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