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 속에서 피어난 할머니 용병들과 로봇 고양이의 경이로운 연대
“우린 지옥을 물려받았어”
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40년간 이어진 제3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된 참혹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고 죽여야 하는 잿빛 사막과, 그 사막을 자양분 삼아 풍요롭고 안전한 환경을 유지하는 절대 요새 ‘트라움’. 작가는 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세계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서늘한 진실을 비춘다.
이 잔혹한 사막에는 유년 시절 징집되어 40년 넘게 전쟁터에서 구르며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용병들, ‘창’, ‘아샤’, ‘말리’가 있다. 몸 곳곳에 지울 수 없는 폭력의 상흔과 기계 부품을 달고 살아가는 이들은 커뮤니티에 반란을 일으키고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벼랑 끝에 몰린 이 늙고 지친 자매들을 돕는 것은 다름 아닌 ‘비인간’ 존재들이다. 살아있는 고양이의 기억을 이식받은 농업용 로봇 고양이 ‘치즈’와 생체조직으로 이루어진 애니멀노이드 두더지가 그들을 신비한 안식처로 이끈다. 할머니 용병들과 로봇 동물들은 서로의 부품을 내어주고 상처를 핥아주며, 자신들이 속한 위험한 사막이 사실은 요새 ‘트라움’의 안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방치된 지옥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견고한 트라움의 바리케이드를 부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최후의 질주가 시작한다.
-한국 SF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할머니 용병’의 서사
지금껏 많은 디스토피아 SF물들이 건장하고 젊은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온몸이 망가진 60대 할머니 용병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화려한 전투 기술 대신, 오랜 세월 지옥을 견뎌낸 자들 특유의 ‘연약함’과 상처 입은 몸으로 연대하는 이 여성들의 서사는 그 어떤 영웅담보다 처절하고 뭉클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 비인간이 가르쳐준 ‘사랑’
동물이 모두 멸종된 척박한 세계에서, 인간보다 먼저 종말을 예견하고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존재는 놀랍게도 로봇 고양이 ‘치즈’이다. 작가는 폭력과 증오만이 남은 인간들을 대신해, 고양이와 로봇 두더지 등 비인간 주체들에게 가장 이타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한다. 경계를 허물고 기꺼이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는 이들의 모습은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안전한 요새 ‘트라움’이 품고 있는 현실의 거울
소설 속 사막과 요새의 공존은 결코 먼 미래의 허구가 아니다. 위험하고 취약한 세계의 희생 위에서만 누군가의 안전한 세계가 유지된다는 끔찍한 진실은, 자원 독점과 계급의 양극화가 극에 달한 지금 우리의 뼈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꼬집는다. 할머니들이 기어코 트라움의 장벽을 향해 돌진하는 결말은, 기울어진 세계를 바로잡기 위한 숭고한 혁명으로 다가온다.
예소연 작가의 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피비린내 나는 폭력으로 직조된 세계에서, ‘사랑’이라는 가장 위험하고도 강력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이들의 아름다운 투쟁기이다. 디스토피아적 절망을 그리면서도 시종일관 위트와 존중을 잃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빛을 발한다.
어느새 팍팍해진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딛고 서야만 내가 안전할 수 있다고 믿게 된 분들이라면, 이 잿빛 사막에서 할머니 용병들과 작은 로봇 고양이가 보여주는 숭고한 온기에 마음을 기대어 보길 바란다. 분명 우리가 잊고 지냈던 다정한 연대의 힘을 다시금 믿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결함투성이의 세상에서 기어코 사랑을 발명해 내는 작가, 예소연
“결국은 사랑이 전부가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혐오와 미움이 도사려도 사랑이 그것을 부수고 싶었다”
이 한 문장은 예소연 작가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202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등단 4년 만인 2025년 소설 ‘그 개와 혁명’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며 문단의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떠올랐다. 이는 역대 최연소 수상 타이기록이자, 한국 문학의 ‘혁명적 발견’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낸 쾌거였다.
1992년에 태어난 예소연 작가는 소설집 ‘사랑과 결함’, ‘너의 나쁜 무리’,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등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휩쓸었다. 그녀의 펜끝은 언제나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들과 상처 입은 존재들을 다정하게 향해 있다.
예소연 문학이 건네는 매력
1. 타인의 ‘결함’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는 시선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을 너무나 쉽게 단정 짓고 재단한다. 그러나 예소연 작가는 자기 바깥을 바라보는 데 기꺼이 오랜 시간을 쓴다. 완벽한 영웅이나 도덕적으로 무결한 인간이 아닌, 실수투성이에 속물적이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한 평범한 인물들의 ‘흠결’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결함 속에서 기어이 이해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어 따뜻한 이름을 붙여주는 그녀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깊은 안도감을 준다.
2. 장르를 넘나드는 ‘연대와 사랑’의 가능성
그녀의 상상력은 일상적인 관계의 미묘한 파열음에서부터, 3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잿빛 디스토피아 SF까지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무대가 어디든,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혼자서 살아남기를 택하지 않는다. 늙고 병든 할머니 용병과 로봇 고양이, 혹은 팍팍한 삶에 찌든 요양보호사와 낯선 할머니들처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온기를 나누는 모습은 각박한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위로 그 자체이다.
3.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혁명적 포용력’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그 개와 혁명’에서 예소연 작가는 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아버지와 2020년대 청년 세대인 딸이 장례식장에서 기상천외한 ‘혁명’을 도모하는 과정을 유쾌하고도 뭉클하게 그려냈다. 단절되고 불화하는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이데올로기마저 압도하는 포용의 서사를 빚어내는 능력은 예소연 작가가 단순히 젊은 세대만의 작가가 아니라 시대를 대변하는 거장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예소연 작가의 소설은 읽기 전에는 타인의 이야기 같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결국 나약하고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발견은 결코 고통스럽지 않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문장들 사이에서 우리는 기꺼이 위로받고, 내 곁의 ‘함께 희미한 존재들’에게 손을 내밀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단절이 일상이 된 도시의 삶 속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갈 힘이 필요하다면 예소연 작가의 작품들을 펼쳐보길 권한다.

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정보
-장르 : 한국 장편소설
-저자 : 예소연
-쪽수 : 224쪽
-발행 : 2023년 06월06일
글 _ 엠큐데이
편집 _ 한이룸
mq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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