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다정한 생활의 마법.. 아베 아키코 장편소설 ‘카프네’
“깨끗한 방과 따뜻한 음식만으로 사람은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일상의 고투에 무뎌진 세포를 깨워줄 생활 예찬 소설, 아베 아키코 작가의 장편 소설 ‘카프네’가 출간되었다. 2025년 일본 서점대상 1위를 차지하며 4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 작품은, 거창한 위로나 섣부른 조언 대신 ‘치우고 끓이는’ 소박한 가사 노동의 시간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법무국에서 일하는 사십 대 여성 ‘가오루코’는 남동생 ‘하루히코’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동생이 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죽기 전 미리 유언장을 남겨두었는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가오루코’는 유언장의 뜻을 전하기 위해 동생의 전 연인이었던 ‘세쓰나’를 찾아간다.
하지만 까칠한 성격의 ‘세쓰나’는 ‘하루히코’의 유산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가오루코’는 그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세쓰나’가 일하는 가사 대행 서비스 회사 ‘카프네’의 일을 얼떨결에 돕게 된다. 반듯한 공무원이자 청소에 소질이 있는 ‘가오루코’와 무뚝뚝하지만 마음을 녹이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세쓰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은 파트너가 되어, 버거운 현실에 짓눌려 방치된 의뢰인들의 집을 찾아가 묵묵히 청소를 하고 맛있는 밥을 짓는다.
아픈 가족을 간호하느라 지친 사람, 독박 육아에 숨이 막히는 사람 등 집안일의 무게에 질식할 것 같은 이들의 엉망이 된 공간을 마주한다. 두 사람은 묵묵히 어질러진 방을 쓸고 닦으며,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달콤한 딸기 파르페나 따뜻한 주먹밥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의 무너진 일상을 다시 정돈해주는 그 지난한 땀방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멈춰있던 두 여성은 어느새 서로의 곁을 내어주며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한다.
-일상을 구원하는 ‘돌봄’과 가사 노동의 재발견
이 소설은 흔히 하찮고 귀찮은 일로 치부되는 ‘가사 노동’이 사실은 한 사람의 생존과 직결된 가장 숭고한 행위임을 역설한다. 방치된 집안일과 텅 빈 냉장고는 생활이라는 전투에서 지쳐버린 현대인의 피로와 고독을 상징한다. ‘세쓰나’와 ‘가오루코’가 제공하는 깨끗한 방과 영양가 있는 따뜻한 한 끼는, 세상의 풍파에 맞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직관적인 처방전으로 다가온다.
-혈연과 제도를 넘어선 기적 같은 연대
‘가오루코’와 ‘세쓰나’는 가족도, 연인도, 흔한 친구 사이도 아니다. 단지 죽은 ‘남동생’이라는 슬픈 교집합으로 묶인 낯선 타인일 뿐이다. 하지만 상실의 아픔을 공유한 이 두 여성이 밥상머리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는 과정은 먹먹한 감동을 준다. 작가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법적인 테두리로 묶이지 않아도 기꺼이 서로의 ‘식구(食口)’가 되어주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다정하게 보여준다.
-위와 장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음식 묘사
냉장고 파먹기로 뚝딱 만들어내는 딸기 파르페, 달걀 된장과 주먹밥, 무지개색 피자 등 ‘세쓰나’가 만들어내는 요리들은 글자만으로도 독자의 미각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아베 아키코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음식 묘사는 요리의 맛뿐만 아니라, 달콤하고 따뜻한 음식을 씹어 삼키며 굳어있던 세포가 되살아나는 인물들의 생명력까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낸다.
소설 ‘카프네’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서서히 녹이는 따뜻한 수프 같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시작하지만, 결코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일상의 소박한 행위들이 가진 구원의 힘을 찬찬히 증명해 낸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지쳐있다면, 혹은 내 마음의 방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 “금방 치울 테니 조금 쉬어”라고 건네는 다정한 문장들이 당신의 오늘을 보듬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조용히 채워줄 것이다.

-저자 소개
1985년생인 아베 아키코 작가는,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며 남모를 고단함을 짊어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어루만진다.
지친 삶을 다독이는 다정한 문장의 연금술사, 소설가 아베 아키코
일본 이와테현 출신인 아베 아키코 작가는 2008년 소설 ‘옥상 보이즈’로 제17회 로망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청춘들의 풋풋한 서사부터 휠체어 테니스를 소재로 한 ‘패럴림픽 스타’ 등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탄탄한 필력을 다져왔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발표한 소설 ‘카프네’를 통해 제8회 마라아야 소설대상, 2025년 제22회 일본 서점대상 1위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으며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선다. 전국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그녀의 소설이 지닌 짙은 공감대와 따뜻한 힘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아베 아키코 문학이 건네는 매력
1. 거창한 위로 대신 건네는 ‘생활의 구원’
아베 아키코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의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남루하기까지 한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구원의 순간을 길어 올린다는 점이다. 그녀는 요리, 청소와 같은 소박한 가사 노동이나 묵묵히 밥을 챙겨 먹는 행위가 사실은 무너진 마음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의식임을 다정하게 일깨워 준다.
2. 혈연을 넘어선 ‘가늘고 탄탄한 연대’의 상상력
아베 아키코 작가는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나 뻔한 로맨스 공식을 과감하게 벗어난다. 피가 섞이지 않거나 사회적인 제도로 묶여 있지 않은 낯선 타인일지라도,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곁을 내어준다면 얼마든지 진정한 ‘식구(食口)’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외로운 개인들이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대해 나가는 서사는, 고립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공존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3. 섬세한 스토리텔링
아베 아키코 작가의 소설은 단순히 잔잔한 위로를 던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인물들의 상처와 과거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 가벼운 미스터리 요소를 솜씨 좋게 엮어내어, 독자들이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사에 몰입하게 만든다. 아픈 사연을 서서히 벗겨내고 그 자리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 넣는 이 섬세한 스토리텔링은 한 번 책을 펼치면 쉽게 덮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아베 아키코 작가는 요란하게 구호를 외치거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돌볼 여력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 삶의 반경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따뜻하게 데우고 싶은 분이라면 아베 아키코 작가의 작품을 꼭 만나보길 권한다. 작가가 정성스럽게 지어 올린 문장의 집에서, 분명 잃어버렸던 일상의 몽글몽글한 감각을 기분 좋게 회복할 수 있을 거다.

소설 ‘카프네’ 정보
-장르 : 일본 장편소설
-저자 : 아베 아키코
-쪽수 : 364쪽
-발행 : 2026년 03월13일 (한국발행)
-기타 : 2025년 일본 서점대상 1위, 제8회 미라이야 소설대상 수상작
글 _ 엠큐데이
편집 _ 한이룸
mq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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